김중업 1922 – 1988
1983 대한민국 산업훈장 수상
1981 육군박물관 설계
1971-1975 프랑스 문화부 고문건축가
1969 삼일로 빌딩 설계
1964 제주대학교 본관 설계
1963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수상
1960 주한 프랑스 대사관 설계
1956 김중업건축연구소(Atelier Kim Chung-up) 개설
1952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김중업은 1952년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 참석하여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게 된다.
당시 파리의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Atelier Le Corbusier)’에서는 현대 건축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이 탄생하고 있었고,
김중업은 아틀리에 일원으로 총 12개의 작품에 참여하였다.
르 코르뷔지에 작업에 참여했던 이 시기를 김중업 건축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서 돌아온 김중업은 전쟁 이후 초토화된 한국 땅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초기 김중업의 작품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이 모방 및 변형된 형태로 다분히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는 부산대학교 인문관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의 1층 필로티와 샹디가르(Chandigarh) 행정청사의 분절된 입면 패턴, 롱샹성당(Chapelle de Ronchamp)의 불규칙한 창문 형태가 절묘하게 조합된 형태로 나타나 있다.
(좌) 김중업 I 부산대학교 인문관
(우)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I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
(우)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I 롱샹 성당(Chapelle de Ronchamp)
“한국적 전통과 김중업 건축,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의 초기작품들은 파리에서 접한 모더니즘.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이 다분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후 모더니즘과 한국 전통건축의 조화를 연구하며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펼쳤다.
김중업은 자신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 대하여 나의 작품세계에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고, 비로소 건축가 김중업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들어선 대지는 도로가 사방으로나고, 지맥이 절단되었고, 주위의 고층 건물로 둘러쌓여져 있는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높이가 높지 않지만 주위를 지배하고 있다.
김중업은 장소의 이 상서로움을 건축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대사관의 지붕의 처마선은 한옥 지붕을 떠올리게한다.
이는 김중업의 건축이 한국적 전통과 결부되어 그만의 건축언어로 나타난 것을 의미한다.
이 곡선 지붕은 단순히 형태적 아름다움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 대지의 기운을 밖으로 내뿜는 반향판의 역할을 수행한다.
“Form doesn’t follow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르지않는다)”
김중업의 건축에서 가장 비판받는 것은 기능과 형태가 상호관련성이 없고, 시공성이 배려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중업의 건축 중 건물의 기능이나 기술적 측면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있다.
근대 건축이 건축의 주제로 삼았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에 대하여 동조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김중업은 기능이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쉽게 달라지지만,
건축은 세기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건축의 형태를 기능에 따라서 결정짓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참고문헌
김희연, 「김중업의 건축적 자아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르 꼬르뷔제에서 김중업까지를 중심으로」, 동서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김소영. 「근대 건축가 김중업의 의의와 한계에 관한 연구: 재료와 형태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이승헌, 「김수근과 김중업 건축의 지역성 구현에 관한 비교 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13권 3호』, 2004
조인철, 「한국의 건축가9-김중업: 김중업 건축의 해석-꿈과 시와 낭만의 건축」, 1997